- 1기 류지원 -
밸브를 연다. 가스가 새어 나오는 소리가 조용했던 실험실의 적막을 깨고 흘러나온다. 플라스틱 케이지의 벽을 누군가 긁어대는 소리가 들린다. 30초나 흘렀을까. 조용해진 그들을 재차 확인하며, 이내 밸브를 잠근다. 실험실에는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오늘도 나는 10마리의 쥐를 죽였다. 아니, 안락사를 시켰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지난 1년 하고도 10개월이 넘어가는 기간 동안 거의 매주 해오던 예삿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예삿일이다.
LMO, Living Modified Organism은 유전자변형생물체를 의미한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입맛에 맞게 유전학적으로 계량되고, 변형된 생물체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밥을 주고, 약물을 투여하고, 실험을 하며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더 자세하게는 그들의 희생에 기대어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연구하고 있다.
△ 연구실 지하에 위치한 동물 실험실
**‘비싼 의료기기 사용료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이를 위해 효율적인 의료기기를 만들어서 시장에 선보일 작정이다. 그리고 약 5년 전, 의료기기 창업팀을 운영하며, 그 최종 목표를 향한 서두를 놓았다. 하지만 의료기기 시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개발하는 과정도 어려웠지만, 제품 출시를 위해서는 인허가부터 임상실험, 생산 공정 인증 등 다양한 스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FDA 승인을 받으려면 학술적 입증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단보조용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었던 우리 팀은 투자 제의도 받았지만, 지식의 한계와 전문성의 부족을 스스로 인지하며 창업팀을 중단하였다.
이후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다음 방점은 연구실 인턴이었다. 의료기기를 사용해서 연구하고, 진단 보조용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연구실에 들어갔다. 재밌었다. 창업팀을 할 때는 협업하기 어려웠던 상급종합병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좋은 저널에도 논문을 실었다. 연구실 생활을 2년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학부생이었던 나에게는 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이 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인류의 삶에 공헌하고 있다는 뿌듯함과는 별개로 늘 마음속에 잔여하고 있었던 하나의 질문이 서서히 응어리지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 연장을 위한 동물 실험은 합당한가?